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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 이경 혹은 철학함의 전범-한석환 명예교수

    • 등록일
      2026-03-12
    • 조회수
      334

숭대시보 링크(2026.3.9.)

 

이경 조요한 선생 탄생 100주년에 부쳐

  2002년 76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한 이경 조요한 선생은 1926년 3월 6일 태어났다. 이 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자로서 은사의 학덕을 기리고자 이 글을 쓴다.

  숭실대학교, 선생이 경작하던 “밭”

선생이 숭실대학교와 맺은 인연은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막 재건한 숭실대학교에 전임강사로 부임한 것이다. 1993년 숭실대학교 총장(제6대)직을 내려놓고 퇴임할 때까지 30여 년 동안 그는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숭실대학교는 그의 아호(怡耕)가 말하듯 선생이 기쁘고 즐겁게 가꾸고 일군, 말하자면, 그의 “밭”이었다. 동시에 믿음의 사람이었던 선생에게 숭실대학교는 하느님에게서 경작을 위탁받은 포도원이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철학연구회, 한국철학회, 미술사학연구회 등의 회장직을 수행하는 한편, 환기재단 이사장,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장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제3대)을 역임하기도 했다. 선생이 말년까지 유지했던 직함은 숭실대학교 명예교수와 대한민국 학술원 정회원이었다.

선생의 주요 저서로는 『예술철학』(1973, 현대 한국의 명저 100권에 선정),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1988, 제2회 서우철학상 수상), 『한국미의 조명』(1999, 제3회 한국미술저작상 수상; 독일어판: Koreanische Ästhetik, St. Ottilien: EOS-Verlag 2005) 등이 있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하였다.

  학문 [1]: 철학과 미학 사이에서

이경 선생의 주된 연구 분야는 서양고대 철학이었다. 인물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심을 차지했다. 독일철학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하이데거와 가다머는 그의 철학을 풍요롭게 만든 자양분이었다. 선생의 철학 연구 양태는 크게 두 갈래로 집약된다. 하나는 보편과 특수를 아우르는 경향성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 일반에서 예술철학으로, 예술철학에서 한국미의 탐구로 특화되어 간 점이다. 전자가 탐구 방법의 성격을 규정하는 측면이라면, 후자는 연구 영역과 관련된 특징이다. 두 갈래의 양태 모두 연륜이 더해갈수록 점점 더 또렷이 드러났다.

다른 학문에 비해 철학에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해 자칫 잘못하면 현실을 도외시한 채 사변으로 흐르기에 십상이다. 삶의 현장에서 유리된 철학은 사상누각과 같다. 본디 철학은 헤겔의 말마따나 “자신이 몸담고 사는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해낸” 지적 건조물이다. 선생이 철학을 하면서 줄곧 견지했던 노선은 보편을 지향하되 특수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는 늘 자신의 “시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철학의 언어로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선생의 경우 한국(의 역사, 문화, 언어, 제도)이라는 조건은 그의 철학적 사고의 필수 구성요소였다.

선생이 미학에 관심을 두게 된 데는 수화 김환기 화백(과 그의 부인 김향안 여사)의 영향이 컸다. 인연의 끈에 이끌려, 운명처럼, 아름다움의 물음에 눈을 떴다. 미학, 예술철학의 영역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름도 생경하던 “예술철학”을 철학과 커리큘럼에 처음 개설한 이도 선생이었다. 그의 주저 『예술철학』은 그 같은 학적 노력의 기록이다.

예술 일반을 철학적으로 궁구하던 선생의 관심은 이내 한국예술의 물음으로 방향을 튼다. 종래 한국예술 연구의 주된 대상은 조형예술이었다. 그러나 선생의 한국예술 연구는 미술에 한정되지 않았다. 음악, 무용, 건축, 정원조성 등 소재가 다양했다. 선생의 한국미론은 선학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토대 위에서 전개되었다. 그의 한국미론을 견인한 것은 그가 서양철학과 예술철학, 미학 연구를 통해 온축한 철학적 통찰이었다. 선생의 한국미론은 다양한 형태의 문화유산을 철학과 미학에 기초한 정치한 개념으로 형상화한 것이었다. 후학에게 선생은 철학함의 전범(典範)이다.

학문 [2]: 한국미의 조명

선생의 한국미론을 특징짓는 키워드는 “비균제성”과 “자연순응성”이다. 전자는 기존의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을 포섭하는 개념으로서, 민족의 북방 유래설과 맥을 같이 한다. 반면 자연순응성은 한반도에 정착한 민족이 농경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생존법을 개념화한 것이다.

선생은 한국미의 성격을 위의 두 개념으로 규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미의 기원까지 추궁해 들어갔던 바—이는 그가 선학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선생이 말하는 비균제성은 한국예술의 무교적(巫敎的) 기원을 반영하고, 자연순응성은,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농경민족의 지모신(地母神) 숭배의 소산이다. 이 같은 선생의 한국미 천착은 그의 학문이 독보적 경지에 도달했음을 웅변으로 대변한다.

선생이 대한민국 학술원 정회원으로 대표했던 분과는 미학이었다. 학술원 정회원으로 피선됨으로써 예술철학과 미학 분야에서 이룩한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공적으로 인증받았다.

  인간 조요한

선생의 동료 철학교수 가운데 그를 두고서 “아름다운 영혼”이라 칭한 이가 있었다. 저 “아름다운”을 나는 그리스어 “칼론”(kalon)으로 새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루기 쉽지 않은 사람됨의 이상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 같은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나는 저 별칭을 이해한다. 선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영혼”이었다.

선생의 트레이드 마크는 온화한 미소, 소리 없이 만면에 잔잔히 번지는 미소였다. 선생에게서 자주 듣던 말은 “괜찮아(!)”였다. 나무람직도 한 대목에서도 그는 나직이 말했다. 괜찮다고. 상대를 그렇게 늘 넉넉히 품어 안았다. 부드러웠지만, 절제가 몸에 배어 있어 상대가 몸가짐을 허투루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천생 선비였다. 맑고 고결하고 단아했다.

“별이 총총한 하늘이,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는 길,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지도가 되어 주고, 그 길들이 별빛으로 환하게 밝혀지는 시대는 복 받은 시대이다.”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벽두에 나오는 문장이다. 내게 이경 선생이 그러했다. 그는 나의 인생 항로를 비춰준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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